정신이 있을 때 해야 할 일 두 가지

필요한 노후자금을 모으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은퇴/노후 준비의 하나지만, 돈만 있다고 노후준비가 잘 돼 있다고 할 수 없다. 만약 돈은 충분히 있는데 치매에 걸리거나 뇌졸중이 와서 재정관리나 의료 관련 결정을 스스로 할 수 없다면 어떻게 될까? 법이 절대적인 미국에서는 누구든 당신을 대신하여 자산을 관리하고 당신을 보살피는데 필요한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법원으로부터 그런 권리(guardianship)를 지정받아야 한다. 하지만 법원이 지정할 수 있는 배우자나 자식이 없거나, 당신의 자식이 멀리 살거나 바빠서, 또는 자식들 간에 이견이 생긴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법원에서 전문 관리인 (professional guardian)을 지정한다.법정 관리인은 자식이든, 아니면 법원에서 지정한 전문 관리인이든, 당신이 사는 집을 팔고 당신을 양로원으로 보내거나 누가 얼마 동안 당신을 방문할 수 있는 지등을 결정할 수 있는 막강한 권리를 갖게 된다. 즉, 법정 관리인은 당신의 형제나 자식의 방문조차도 제한할 수 있다. 더불어, 그들은 당신의 자산 관리와 당신을 보살피며 사용하는 시간에 대해 ‘적정한 금액’ (reasonable fee) 을 스스로에게 지급할 수 있는데, 현실적으로 관리/감독이 제대로 되기가 힘든 부분이다. 그래서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노인들을 위해 지정된 관리인들이 스스로에게 과다한 금액을 지급하는 형식으로 노인들의 자산을 탕진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진정으로 당신의 안녕을 위한 다른 결정을 하리라 기대하는 건 너무 순진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일을 방지할 수 있을까? 지금 할 수 있을 때 당신이 원하는 사람을 대리인 (Power of Attorney)으로 미리 지정해두는 거다. 당신을 대신하여 재정관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첫째, 당신이 물론 믿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지만, 둘째는 그 사람 스스로 돈 문제가 있는 사람이면 곤란하다. 견물생심이라고 했다. 스스로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 있는 사람에게 그야말로 ‘눈먼 돈’으로 여겨질 수 있는 남의 돈이 보일 때 정말 당신을 위한 합리적인 재정관리를 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평소에 돈 문제가 없고 굳게 믿었던 사람조차 정신 멀쩡한 사람에게 사기를 치는 일이 흔한 세상 아닌가? Power of Attorney는 당신의 모든 재정 및 의료 관련 결정권을 한사람에게 줄 수도 있고, 재정관련, 의료관련, 사후 자산 처리 관련 등의 권한을 여러 사람에게 부분적으로 위임할 수도 있다.    

또 한가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서류가 있다. 당신이 의식불명인 상태에서 기계를 통해 연명하고 싶은지, 심폐소생술을 받고 싶은 지등을 미리 문서화 해 놓는 거다. 이는 주마다 Living Will, Advance Health Care Directive 등의 다른 이름으로 불리며, 보통 인터넷을 통해 서류를 무료제공 한다. 이 서류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는, 당신의 뜻대로 인생을 마감하고 남은 가족에게 불필요한 짐을 주지 않기 위해서이다. 생각해 보시라. 만약 당신이 심장 발작으로 의식불명일 때, 당신의 아들이나 딸이 의사에게 부모를 살리지 말라고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만약 당신이 평소에 그걸 원하지 않았어도 문서화 해놓지 않으면 자식 입장에서는 어떤 결정도 힘들 수밖에 없다. 평소 수술이나 의료기구에 연명하지 않겠다던 나의 친정아버지가 건강하게 살다가 2015년 어느 날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의식을 잃으셨다. 의사가 50% 미만인 회복 가능성을 위해 수술을 하겠냐고 물었을 때 내가 주저 없이 ‘No’ 라고 할 수 있었고, 아버지가 소원대로 “깨끗하게” 24시간 내에 편안히 돌아가실 수 있었던 건, 당신이 원하는 바를 일찍이 문서화 해 놓았기 때문이다. 아버지께 두고두고 감사한 부분이며, 나 또한 이 서류가 왜 필요한지를 피부로 절감한 계기이다. 

이는 단지 노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건강하고 젊은 사람도 성인이라면 반드시 준비해 두어야 하는 서류이다. 미국에서 ‘죽을 권리’에 대한 뜨거운 논쟁을 일으켰던 Terri Schiavo (1963-2005) 케이스를 기억하는가? Terri Schiavo가 20대 후반에 심장마비로 의식불명이 된 후, Guardianship이 있던 남편은 그녀가 평소에 의식불명인 상태로 연명하기를 원하지 않았으므로 그녀의 의견을 존중하여 산소호흡기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그녀의 부모는 그녀의 종교적인 믿음상 연명 치료를 거부하지는 않았을 것이므로 산소호흡기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장기간의 법정투쟁을 벌였다. 이 사건은 왜 모든 성인이 Advance Health Care Directive를 준비해 두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저 나중에 가족이 ‘알아서 하겠지…’ 하고 서류 준비를 해두지 않는 건 당신 스스로의 존엄성을 부인하고 남는 가족에게는 죽으면서까지 불필요한 짐을 주는 무책임한 일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한 서류 준비는 생각보다 복잡하거나 돈이 많이 드는 일이 아니다. 당신이 할 수 있을 때, 그나마 정신이 있을 때 준비해 두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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