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1세대 부모로 산다는 것
이민 1세대로 살아가는 부모들에게 많이 보이는 특이한 점은 자식들에게 많이 미안해 하는 것이다. 부모가 영어를 잘 하지 못할 때 그런 경향이 더 심해 보인다. 영어가 불편하니 학교 관련 행사나 선생님과의 상담 등 부모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했음에 미안해하는 마음 이해한다. 일하느라 바빠서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음에 미안하고 속상한 마음 충분히 이해한다. 그런데 안타까운 건, 사람들이 그런 미안한 마음을 돈으로 보상하려 한다는 거다. 자신을 위해서는 $1도 아까워하면서 자식들을 위해서는 아낌없이 쓴다. 신발이든 가방이든 유행이라서, 또는 아이들이 원하니까 비싸도 사준다. 아이에게 관심이나 재능이 없어도 음악 레슨은 기본이요, 차, 대학비, 심지어는 결혼 비용까지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다 대주고도 더 못 줘서 미안해한다. 그나마 본인들의 노후 준비를 충분히 하고 남는 돈으로 자식들을 위해 쓴다면 누가 뭐랄까? 문제는 그러는 대부분의 이민 1세대 부모들이 본인들의 노후 준비를 거의 못 하고 있다는 거다.
우리는 지금 시대와 문화가 다른 곳에서 살고 있다. 한국에서도 더이상 자식이 부모를 모시지 않는데 하물며 미국에서 자라는 자식이 나중에 늙은 당신을 도와줄 거라 생각하면 대단한 착각이다. 만에 하나 도와준다면 그건 정말 감사할 일이지만, 당연한 일은 절대 아니요, 그걸 기대한다면 당신은 꿈의 세계에 살고 있는 거다.
나의 친정 부모님은 말년에 나와 살다 돌아가셨는데, 두 분에게 가장 큰 걱정은 나에게 ‘짐’이 되는 것 이었다. 당신들이 움직일 수 있는 동안에는 청소하고 밖에서 풀이라도 뽑으며 작으나마 ‘밥값’을 할 수 있지만, 아파서 움직이지 못하면 자식에게 온전히 짐이 되니 그걸 가장 두려워하셨다. 엄마가 2006년에 위암으로 식사를 못 하고 몇 달 고생하다 돌아가셨는데, 코를 통해 엄마에게 음식을 주입하는 호스가 아침에 보면 가끔 빠져 있었다. 엄마는 자다가 실수로 빠진 거 같다고 했지만, 정신이 있을 때 일부러 뽑아낸 걸 나는 안다. 자식에게 짐이 되는 게 죽기보다 싫으셨던 거다. 돌아가실 때까지 정신이 있을 때마다 나한테 ‘미안하다’고 하셨다. 아버지는 그 후 새벽마다 목욕재계하고 당신도, 자식도 고생 없이 가게 해달라고 기도하다가 2015년 어느 날,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다음 날 새벽에 돌아가셨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 성인이 되었으므로, 자식이 ‘노후 준비’였던 부모세대를 이해하는 마지막 세대이다. 그래서 나는 부모를 당연하게 모셨지만 (물론, 이해해 준 남편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중에 내 자식과 함께 사는 것은 꿈에도 기대하지 않는다. 시대와 문화가 다르게 자라는 내 자식들이 나중에 나와 함께 살기를 바라는 건 현실 가능성도 없지만, 부모를 한집에 모시거나 경제적으로 보조를 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경험을 통해 알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엄마가 왜 고통을 감수하며 생명줄인 호스를 직접 뽑아냈는지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내 노후준비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여느 한국 부모들만큼 자식 교육이 내게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의 레슨비나 대학자금은 나의 노후준비에 필요한 돈을 저축한 다음의 일이다.
우리는 지난 시간을 돌이킬 수 없다. 아무리 지금 자식에게 가진 걸 다 줘도 부모 자신도 젊고 몰라서, 시간이 없어서, 또는 능력이 안 돼서 해주지 못한 미안함에 대한 보상은 되지 않는다. 다만 지금 우리가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건 앞으로 더이상 미안할 일을 만들지 않는 거다. 그러려면 늙어서 자식들한테 경제적 부담이 되지 않도록 노후준비를 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죽는 순간 까지도 자식에게 미안한 일을 하지 않는 유일한 길이다.